Skip to content

조회 수 1304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한국인삼공사의 사보인 [심] 2005년 겨울호(11-12월)에 실렸던 글입니다

 

 

<속담 속에 숨어 있는 겨울나기의 지혜>

 

 

※ 가을 무 꽁지가 길면 겨울이 춥다

 

  ‘가을 무 꽁지가 길면 겨울이 춥다.’는 속담이 있다. 그 해 겨울이 몹시 추우리란 것을 무가 먼저 알고 월동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춥고 긴 겨울이 올 양이면 사람이 모르는 무슨 조짐같은 것이 땅속에서는 나타나는 것일까. 뽑아 놓은 무의 뿌리가 한껏 자라 있음을 보고는 그제야 사람들도 올해엔 만만치 않은 동장군이 찾아오리라 짐작하게 된다. 이처럼 계절이나 농사에 관련된 우리네 속담들은 기상관측소가 없던 시절의 일기예보와도 같은 것이었고,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가정백과이자 생활의 지침서였다.
  황송문 시인의 <보리밟기>라는 시에는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풍악(風岳)을 견디는 소나무처럼/뿌리는 그렇게 살아 남아야 한다고/농부는 보리밟기를 하고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보리밟기는 풍속 그 이상의 의미, 즉 생명과 인내에 대한 가장 솔직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보릿고개, 그 해에 수확한 쌀을 겨우내 모두 먹어버린 후 오월 초여름 보리가 여물기 전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배고픔에 쫓기던 그 서럽던 연례행사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도 우리를 두렵게 하던 것이었다. 얼마나 고단하였으면 ‘고개’를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을까. 하지만 그 고개 너머에는 ‘보리’라는 이름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코 막막한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겨울 한 철 잘 버텨야 할 보리를 조상들은 얼마나 애지중지 하였겠는가. 행여 보리밭에 서릿발이 생겨 뿌리를 내리지 못할 일이 생길까 하여 틈만 나면 밟아 주라는 의미로 ‘겨울 보리밭은 밟을수록 좋다.’는 근면의 속담이 생겼고, 함박눈이 덮어주어 보리가 얼어죽지 않고 잘 견딜 수 있을 터이니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하는 희망의 속담이 생겼던 것이다.
  늦가을 밭에서 캐어 낸 무의 뿌리를 보면서 필시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리라 예상하고는, 낡은 지붕과 무너진 담장을 서둘러 고쳐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올 겨울엔 보리밭을 많이 밟아 주어야 할 모양이니 짚신도 넉넉히 삼아 두어야 할 일이다. 그날 밤 어미가 두터운 겨울옷을 짓는 동안, 아비는 건너편에서 연신 짚신 삼을 새끼를 꼬고 앉았으며, 어린 것들은 제 머리통보다도 큰 무를 서걱서걱 베어 먹고 있었으리라.

 

 

※ 여름비는 잠비요, 겨울비는 술비다.

 

  ‘제비가 낮게 날면’, ‘청개구리가 울면’, ‘자라가 물에 올라오면’, ‘개미가 줄지어 가면’, ‘고양이가 세수하면’, ‘개가 풀을 먹으면’, ‘뱀이 산으로 올라가면’ 등과 같은 말의 뒤에는 모두 ‘비가 온다.’가 붙어서 슬기 어린 속담이 된다. 생명체들의 작은 움직임에서 놀라운 자연의 이치를 체득한 결과인 것이다. 비가 오기 전 저기압이 형성되고 습도가 높아지면, 날벌레들은 날개짓이 무거워 땅 근처로 내려오고, 땅이나 물속에 사는 녀석들은 숨쉬기가 답답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게 된다. 어떤 것들은 피난 채비를 꾸리기도 하며, 개미와 같이 단체생활을 하는 벌레들은 바삐 출입구 공사를 함으로써 비에 잠기지 않을 대비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제비들은 부산하게 비설거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지상의 먹이들을 노리며 낮게 날아드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도 신경통이 도지거나 상처가 가려워지고, 예전에 다쳤었던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현상 등의 확률 높은 일기예보가 나타난다. 아무튼 비가 오기 전의 낮고 무거운 분위기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예민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쉬이 한 잔 술이 생각나고, 그리운 이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이라며 노래하던 가수도 있지 않았던가.
  비가 오면 농가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봄비는 일비요, 여름비는 잠비요, 가을비는 떡비요, 겨울비는 술비다.’라는 속담이 있다. 농사일로 한창 바쁜 봄에는 웬만한 비가 와도 일을 쉴 수가 없지만, 크게 바쁜 일도 없이 무더위에 시달리던 여름에 비가 오면 모처럼 시원한 낮잠을 청했다. 오곡을 풍성하게 수확한 가을에 비가 오면 햅쌀로 떡을 지어 소박한 잔치를 벌이고, 아무 일이 없어 지루한 겨울철 농한기에 비가 오면 그저 술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 겨울 화롯불은 어머니보다 낫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속담이라고 하여 모두 그대로 따라할 만한 것은 아니다. ‘겨울 화롯불은 어머니보다 낫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추운 겨울에는 그저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숯불구이집에서건 모닥불놀이를 할 때건 탐스럽게 지펴진 불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손바닥을 펴고 다가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아무리 따뜻한 화롯불이 좋기로서니 어머니보다 낫다고 할 것까지야.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엮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월별로 분류된 세시풍속과 계절음식, 민속놀이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겨울에 해당하는 민속놀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신나게 땀을 흘릴 수 있는 것들임을 발견할 수 있다. 팽이치기?제기차기?썰매타기?석전놀이 등과 같이 움츠러들기 쉬운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놀이나, 횃불놀이?쥐불놀이처럼 굉장히 역동적으로 불을 즐기는 놀이들이 겨울철 우리네들의 대표적인 놀이였던 것이다. 따뜻한 아랫목이나 화롯불을 찾아들기보다는 그 추위를 즐기거나 극복할 신나는 활동들을 권장함으로써 신체의 건강과 생활의 활력소를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성실과 인내로 이 땅을 일구어 온 우리식의 겨울나기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겨울 화롯불이 어머니보다 낫다는 속담은 반어적 표현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에 훨씬 맛나고 적실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동물들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겨울잠을 청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겨울이란 한 철이 사람살이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보리밟기에 열중하면서 돌아올 봄을 준비하는가 하면, 바쁜 일이 없는 날 비라도 내리면 한 잔 술로 그 여유를 만끽하였고, 한 편으로는 이 계절과 어울려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처럼 건강한 사고방식이 짤막한 속담들 속에서 맑은 빛을 내고 있다.


 - 이태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원)

 


 

웹진으로 간행된 모양은 다음과 이렇습니다

김진이님의 일러스트가 참 예쁩니다. 원본을 제게 보내주셨었지요

 

 

winter.jp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 조상들의 여름나기 file 비맞인제비 2011.09.19 6280
2 속담 속의 설날 풍경 2 file 하늘지기 2010.01.08 17362
» 속담 속에 숨어 있는 겨울나기의 지혜 file 하늘지기 2010.01.03 13044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Gogong.com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