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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9 01:04

조상들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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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다른 곳에 실었던 것 같은데, 삼성화재 전자사보 [좋은e친구]의 요청으로 분량을 줄여서 다시 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상들의 여름나기>


 

▶ 복날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있다.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인 삼복에는, 몸의 기운이 쉽게 빠지기 때문에 입술에 붙은 밥알조차도 무겁게 느껴질 만큼 무기력해지기 쉽다는 뜻이다. 삼복의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장차 다가올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여름의 더운 기운에 눌려 항복할 정도로 무덥다는 것이다. 하지 후 셋째 경(庚)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째 경일을 말복이라 하고, 이 삼복이 지나면 비로소 여름이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냉장고가 없던 과거에는 무더운 여름날 높은 관직의 양반들에게 빙표(氷票)라는 것을 나누어 주어 장빙고에서 얼음을 타 먹을 수 있게 하였다. 한여름에 얼음을 먹는 것이 당시에는 매우 호사스러운 일이겠지만, 언제나 딱딱한 복장을 갖추어야 했던 양반들과 달리 서민들은 남녀노소 계곡과 바다로 찾아가 시원한 물놀이나 모래찜질을 즐겼으니 크게 서운할 것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이겨내었었는지, 입고 먹고 즐기던 모습을 살짝 엿보기로 하자.

 


여름밤의 내 사랑, 대나무 부인

  고유가 시대의 어려움 속에 살다 보니 에어컨을 돌린다는 것이 종종 무서운 일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렴한 투자로 더위를 피할 방법을 찾게 되고, 그 궁리의 끝에서 조상들의 지혜를 만나곤 한다. 구시대의 낡은 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죽부인을 21세기에 다시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건강에도 해로운 에어컨의 찬바람을 끄고, 저렴하게 여름을 나도록 도와주는 물건들을 한 번 찾아나서 보자.
  여름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구는, 대나무로 된 살에 튼튼한 한지를 붙여 만든 부채다.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에 선물을 주고받는 요즘의 풍습처럼, 우리에게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멋진 풍습이 있었다. 여름철의 부채만큼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다정한 방법이 또 있을까. 부채는 단순히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는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완성시켜주는 최고의 액세서리가 되기도 한다.
  부채 말고도 더위를 쫓기 위해 동원되었던 도구로 등등걸이, 등토시, 통발, 화문석, 발, 평상 등이 있다. 모두가 자연의 바람이 몸에 전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원리의 훌륭한 아이템들이다. 등나무 줄기를 엮어서 만든 등등거리와 등토시는 옷을 입기 전에 각각 등과 팔에 착용하는 것인데, 옷이 살갗에 닿지 않게 하여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준다. 통발은 그와 비슷하게 철로 만들어 옷 안에 입는 것이다. 왕골을 엮어 만드는 돗자리인 화문석은 실용성과 심미성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문틀에 늘어뜨린 발은 그 어떤 커튼보다도 우아한 멋을 자아낸다. 이동식 툇마루라 할 수 있을 평상은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최고의 휴식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여름철의 잠자리를 돕는 일등명기는 역시 죽부인(竹夫人)이다. 오죽하면 대나무로 만든 부인이라 했을까. 죽부인은 대나무 줄기를 엮어서 안고 자기에 알맞도록 만든 것이다. 대나무의 차가운 감촉도 좋거니와 바람이 통할 공간을 만들어 주니, 그야말로 품고 잘 수 있는 포터블 선풍기인 셈이다. 이 물건의 가치가 얼마나 귀하였던지, 아버지의 죽부인을 아들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함께 묻거나 태웠다 한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모래밭에 몸 누이고

  집 안에서 자연의 바람을 끌어오는 피서법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산수를 찾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시기가 되면, 마을의 남녀가 물 좋은 계곡을 찾아가 물맞이를 하였다. 혜원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이란 그림을 기억해 보자. 옷을 훌훌 벗어던진 여인들이 한껏 편안한 자세로 물맞이를 즐기고, 그 뒤편 풀섶에서는 사내들의 훔쳐보기가 한창이다. 특히 음력으로 6월 15일인 유두(流頭)에는 남녀노소의 물놀이와 천렵놀이로 산중잔치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한여름에도 복장을 갖추어 입어야 했을 정도로 격식을 중시하던 선비들에게 있어 가장 간편한 피서법은 탁족(濯足)이었다. 탁족은 계곡 물에 발을 담금으로써 자연과 하나가 되어 더위를 잊는 아주 고상한 피서법이다. 탁족은 더위와 함께 마음의 갈증을 씻어내기도 함으로써 정신 수양의 효과를 겸하기도 하는데, 양반이 아니라도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몸과 마음에 두루 유익한 피서법이다. 요즘도 족욕이나 반신욕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 연원이 아마도 탁족에 있지 않나 한다.
  백사장이 있는 곳에서는 모래찜질 또한 훌륭한 피서법이었다. 모래찜질은 특히 산후의 신경통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민간요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열치열의 원리로 더위를 쫓는 한여름의 모래찜질에서는 뜨겁게 달궈진 모래알에 의한 화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벼운 옷이라도 입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내들만이 즐겼다던 피서법이 있으니, 이른바 양풍(兩風)이라 불리는 즐풍(櫛風)과 거풍(擧風)이 참으로 재미난 것이었다. 이것들은 주로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重陽節)에 행해지던 것이라 하나, 녹음이 짙은 여름철의 산에서 즐기기에도 제법 좋았을 듯하다. 즐풍은 바람으로 머리를 빗는다는 뜻인데, 사내들이 산봉우리에 올라가 일 년 내내 상투로 묶여 있던 머리를 풀어헤쳐 바람을 쐬는 것을 말한다. 이는 숨쉬기에 목말랐던 머리카락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자, 격식이라고 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자신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하는 의미심장한 행위가 된다. 원래 즐풍목우(櫛風沐雨, 바람으로 빗질하고 비로 머리감는다)란 말은 갖은 고생을 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피서법인 즐풍은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니, 즐풍이란 말을 앞세우고 산꼭대기에 올라 바람을 즐기는 여유로움에 얄밉지 않은 웃음이 난다.
  사내들의 산중피서는 즐풍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내들은 또 한 번 멀쩡한 용어를 패러디하여 엉뚱한 곳에 이용하였으니, 그것이 거풍이다. 거풍(擧風)은 원래 책이나 곡식, 의복 등 습기 때문에 눅눅해진 물건들을 꺼내어 바람을 쐬고 볕에 말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즐풍을 마친 사내들은 볕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후 아랫도리를 내리고 눕는다. 항상 음습하게 유지하던 신체의 일부에 모처럼 바람과 햇빛을 듬뿍 제공하는 것이므로, 거풍임에 틀림은 없다. 다만 여인들이 다니지 않는 장소를 잘 선택해야 오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국물로 양기 충전 완료

  피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여름철 보양식이다. 종종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많은 음식 중에서도 양기를 보충해 주는 복날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개장국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개장국은 이미 [사기(史記)]의 기록에 기원전 676년인 진(秦) 덕공(德公) 2년에 성안 대문에서 개를 잡아 해충의 피해를 막았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이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조선에서 개를 먹는 풍습을 특이한 것으로 기록하곤 하였는데, 눈치가 보였던 것인지 1940년대부터는 개장국 대신 보신탕이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개고기가 주재료라는 것을 표면적으로나마 숨기게 되었으며, 그 후로 영양탕이나 사철탕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복날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팥죽도 있는데, 삼복에 먹는 팥죽을 복죽(伏粥)이라고 한다. 팥죽은 주로 동지에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운 날에는 음기가 너무 강하여 그렇지 않아도 지친 사람들에게 잡귀가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여 팥죽의 붉은 기운을 통해 물리치고자 했던 것이다.
  개장국, 팥죽과 함께 여름철 3대 보양식으로 꼽히는 또 하나의 음식은 삼계탕(蔘鷄湯)이다. 원래는 계삼탕이란 이름으로 불렀으나, 우리나라의 인삼이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인삼을 강조하는 이름인 삼계탕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계탕은 쇠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육개장과 함께, 지금까지도 개장국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복날의 대체식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생선을 이용한 여름철 보양식으로는 어죽(魚粥)과 용봉탕(龍鳳湯)이 있다. 어죽은 흰살 생선의 살을 삶아 으깨고, 그 뼈로 국물을 내어 만든다. 어죽은 영양가도 높은 뿐 아니라 먹기에도 편한 음식이기 때문에 환자나 노인,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보양식이다. 용봉탕은 잉어와 닭은 넣어 끓인 국인데, 이름이 용봉탕인 이유는 잉어를 용에, 닭을 봉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황하강 상류의 삼문협 폭포를 뛰어넘은 잉어가 용이 되었다는 데에서 ‘등용문(登龍門)’이란 유명한 말이 생겨난 것에서 알 수 있듯, 용이 되고자하는 잉어의 강한 생명력과 봉황의 영원불멸하는 기운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그 이름값만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영양 만점의 보양식이다.
  그 외에도 서민들은 여름철 음식으로 콩국수를 즐겼고, 양반들은 깻국수를 많이 먹었다. 육식을 할 수 없는 스님들도 콩과 들깨로 만든 콩국수를 복날 별미로 먹었다고 한다. 또한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강원지역에서는 초복 무렵에 거미를 말려 가루로 만들어 두었다가 감기에 걸렸을 때에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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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e친구]에 실린 모양은 아래와 같습니다. 분량이 확 줄고 구성이 바뀌었습니다.

 

삼성화재_좋은e친구_06_7_1.JPG 삼성화재_좋은e친구_06_7_2.JPG 삼성화재_좋은e친구_06_7_3.JPG 삼성화재_좋은e친구_06_7_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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