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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샘이 이런 걸 할려니 힘드네요.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란 걸 난생 처음으로 받았는데, 영~ 힘드네요. 냉정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짜장면 배달

이문경_경북장산중학교 교사

5년전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은 질풍노도의 정점을 달리던 중학교 3학년 남학생들이었다. 당시 내가 가르치던 8개반 학생의 이름을 모두 외울만큼 나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아이들과 눈빛과 마음을 교환해가며 국사를 가르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가끔 엎드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주로 럭비부 체육 특기생들이다. 엎드리지 마라고 했을 때 "저는 강훈련하는 것이 너무 힘드는데요? " 이렇게라도 말하면 다행이다. 마지못해 아무 말 없이 억지로 일어나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목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가 다시 엎드리면 또 건드리기 힘들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모두 특기를 살려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희대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수업 시간마다 초점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있는 무엇인가 있는 듯이 멍하게 응시하며,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그의 옆을 지나가면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났었다. 그가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무단 결석할 때면 그의 담임은 무단히도 속을 썩었다. 나도 그 학생이 학교 올 때면 수업 시간에 질문을 던져 보기도 하고, 괜히 말을 건네보기도 하였지만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담임으로부터 가정 사정이 딱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어느날 그 학생은 결국 자퇴를 해 버렸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면 텅 빈 자리를 바라봐야 했었고, 그 학생 뿐 아니라 당시 여러 반에 자퇴한 학생들의 빈 자리가 하나 둘 생기는 것을 아픈 가슴으로 바라봐야 했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담임에게 제발 자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까지 하는 것을 교무실에서 지켜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난 바로 이웃의 다른 학교로 전근하게 되었다. 우리집의 아이들이 짜장면을 시켜달라는 성화에 배달을 시켰다. 배달통을 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배달원이 바로 희대가 아닌가? "어?" 하는 순간 희대가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엉겁결에 잘 지내냐고 안부만 묻고, 희대는 돌아갔다.
어느날 우리 아파트에 들어오기 위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오토바이를 타고 휑하게 나타나는 희대와 만났다. 공교롭게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나는 희대에게 물었다. "요즘 지낼만하지?" 그 순간 희대는 내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살고 있는 11층을 눌러주면서 "저는 짜장면집 사장이 될 건데요." 반짝이면서 말하는 눈빛이 놀라웠다. 중 3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벌써 기술을 다 배워두었는데요. 이제 돈 모으고 있고요, 돈이 모이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거예요." 나는 물었다. "너 예전에 그렇게 학교 다니지 싫어했는데, 후회안해?" 희대는 고개를 흔들며 " 아뇨, 전 좋은데요. 학교보다는 이게 훨씬 더 재미있어요"
난 희대가 그렇게 말을 잘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집에 와서도 난 생각에 잠겼다. 혹시 우리 교사들은 일정한 틀 속에 학생들이 들어오기만을 강요하지 않았을까? 부모님도 없이 할머니와 절박하게 사는 희대에게 공부만 답이라고 몰지 않았을까? 그때 희대는 공부가 그의 해결책이 아니었다보다. 당장 용돈이 없고, 끼니도 부족한데, 차라리 짜장면 배달이 그에겐 미래가 보였던 것이다.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은 실질적으로 아주 미미한 혜택이었던 것이다.
몇 달후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다시 되돌아와 인사를 하는 청년을 만났다. 헬멧을 벗고 꾸벅 인사를 하는데 바로 옆 반에서 담임에게 자퇴하게 해달라고 사정한 학생이었다. "선생님! 저 혁균인데요." 내가 왜 그를 모를까? "그럼 기억하지. 반갑다. 어느 반점에서 일해?"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혁균이도 짜장면 만드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까? "너 혹시 고입 검정고시 쳤니?" 혁균이는 고개를 떨구며 "아뇨" 힘없는 목소리에 내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아직도 방황하고 있구나. "혹시 내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나 장산중학교 있으니깐"
그 후 몇 년이 지나 바로 며칠전이었다. 나는 좁은 골목길을 차를 몰고 지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차가 와서 살짝 비켜주고는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가 뒤에서 경적을 울려 돌아보니, 아까 봤던 그 차였다. 차를 돌려 한참을 쫓아온 것이다. 그 순간 앞 문이 열며 나서는 청년이 아는 얼굴이었다. "선생님! 저 혁균인데요"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 나는 그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았다. "우와! 너 차도 장만했구나. 멋있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러나 혁균이 얼굴이 너무 좋아진 것만으로도 안도를 느꼈지만, 중졸 학력도 없이 험한 세상과 부딪쳐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마음 한 켠이 무겁다.
학교는 마지못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즐거워 다니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학교 생활의 대부분은 수업 시간이다. 나는 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기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아이들을 고문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때 몸부림을 치면서 학교를 거부했던 학생들이 이제야 미소를 찾는 것을 보며, 나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에 잠긴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무슨 일을 해야할까?


Comment '1'
  • profile
    하늘지기 2004.01.26 23:24
    흠... 이런 무리한 요청을 ㅎㅎ
    냉정하게 이야기하시라니,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천천히 읽어보고 소견이 있으면 국사교실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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