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 이태화
(2006년에 몇 가지의 자료를 참고하여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1. 개관 및 유래
강릉단오굿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향토신제 중 가장 규모가 큰 제의이자 축제인 강릉단오제의 일부이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 신주(神酒)를 빚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5월 6일(팔단오) 소제(燒祭)를 하고 신을 봉송(奉送)하는 데까지 장장 오십일간에 걸친 대대적인 행사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관(官)에서 주도하여 행하여졌으나, 현재는 민간주도형으로 바뀌어져 행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제의는 음력 5월 1일부터 시작되는데, 단오굿과 관노가면극을 중심으로 그네·씨름·줄다리기·윷놀이·궁도 등 각종 민속놀이와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이 기간동안에는 영동 일대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에 달하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강릉시는 온통 축제분위기를 이룬다.
대관령 서낭신에 대해,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는 김유신(金庾信)장군이었으나 근자에는 강릉 태생의 범일국사(泛日國師)가 죽어서 서낭신이 되었다고 전하며, 강릉 정씨(鄭氏)집 딸이 서낭신의 부인이 되었다고 해서 여서낭 이라 부르고 있다. 그래서 단오제 때에는 대관령 서낭당에 있는 서낭을 모셔다가 시내에 있는 여서낭당에 며칠 동안 머물게 한 다음 서낭 내외분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게 된다.
2. 구성
(1) 임원 구성
단오제를 지내기 위해서 임원을 선출하는데 이 임원들은 자신이나 가족에게도 부정한 일이 없는 사람을 선정하고 있으며 헌관(獻官)은 관례적으로 지방행정의 책임자인 시장, 군수, 경찰서장 또는 교육장이 맡고 있다.
(2) 제의 순서
단오제의 본제는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거행하지만 그 준비는 3월에서부터 시작된다.
1)3월 20일에 제주(祭酒)를 담근다.
2)4월 1일을 초단오(初端午)라 해서 헌주(獻酒)하고 무악(巫樂)이 있다.
3)4월 8일은 재단오(再端午)라 해서 역시 헌주와 무악이 있다.
4)4월 14일에 임원과 시민들은 서낭신을 모시러 강릉을 떠나 대관령으로 향한다.
5)4월 15일 삼단오(三端午)에 대관령 서낭신과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서낭당으로 서낭신을 모셔온다.
6)4월 27일은 사단오(四端午)이며 무악이 있다.
7)5월 1일은 오단오(五端午)로 본격적으로 굿이 벌어지고 관노(官奴)들에 의해서 가면희(假面戱)가 시작되며 화개(花蓋)를 메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
8)5월 4일을 육단오(六端午)라고 해서 관노가면희(官奴假面戱)와 무악이 있고
9)5월 5일은 칠단오(七端午)로 본제(本祭)를 지내고, 관노가면희가 있어 제사와 굿의 절정에 이른다.
10)5월 6일은 팔단오(八端午)라고 해서 소제(燒祭)를 지내고 서낭신을 대관령까지 모셔가는 봉송(奉送)의 의식이 있다. 이것으로써 3월 20일부터 약 50일에 걸친 단오제가 막을 내린다.
3. 강릉단오굿의 목적 및 특징
강릉단오제는 제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축제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향토 축제이기에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고 크게 난장이 벌어진다.
강릉단오굿의 목적은 제화초복(除禍招福)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안정을 기원하는 데에 있다. 풍년이 들고 풍어를 이루며 질병이 없이 평안한 생활을 소원하여 제사를 지낸다. 또 강릉에서 서울로 오려면 대관령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호환에 대한 산로안전(山路安全)을 비는 목적도 있었다.
강릉 단오제에 관한 기록은 남효온(南孝溫)의 문집(1454년)에 있고 또 허균의 문집(1603년)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큰 행사이었고, 무당만 해도 백여 명이 굿을 하였다고 전하여 오는 걸로 봐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단오제 때에 관노들에 의해서 무언극(無言劇)인 관노가면놀이(官奴假面놀이)가 있어 특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