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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진 posted Apr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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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恨, 한이란 대체 무엇인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 주제인 한은 무엇인가. 우리의 소리에, 아니 우리 민족 정신의 근본에 자리 잡은 한이란 무엇인가. 유봉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하면서까지 집착했던 한이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 '한'이라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恨의 의미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 정도이지만 이 작품에서의 한은 그런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이다. 판소리의 근간이 되는 '한'은 이 비극적 가족사에서 어느 정도 그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당시 천대받던 소리꾼이라는 직업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좋든 싫든 그들 모두에게 어느 정도 한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두 부녀와 달리 '밥도 안 나오는'소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던 동호의 가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죄인이라는 신분적인 차별에서가 아닌, 판소리가 받던 업신여김 또한 그들의 한스러움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유봉의 친구가 동호와 송화에게 판소리 대신 내 밑에서 그림을 배우는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넌지시 던졌을까. 이런 의미에서 유봉의 "언젠간 판소리가 판을 치고 말거야!"라는 외침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공허한 울림이요, 절박한 다짐으로까지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이란 정말 이런 절망에서 오는 한탄에 불과한 것일까. 송화 개인에게 눈을 돌려보자. 송화는 동호가 떠난 뒤 식음을 전폐한 후 소리까지 금하였으나 눈이 먼 후 다시 소리를 시작한다. 그러나 원망의 기색이 완연해야 할 송화의 소리에는 그러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송화가 자신의 한을 원망으로 지니지 않았음은 훗날의 유봉의 말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또 송화와 동호가 재회하여 회포를 푸는 장면에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을 눈멀게 한 유봉을, 자신을 매몰차게 떠나간 동호를 원망의 감정 속에 가두어두지 않고, 그 모든 한을 용서하는, 유봉이 “네 속에 응어리진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해라”라고 그렇게도 말하던 그 ‘한’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우리가 찾던 해답이 조금이나마 드러난다. 판소리의 화신인 술집작부로 전락한 그녀의 모습조차 지금의 우울한 판소리의 현실을 나타내는 듯 하는 세속적인 차원의 '한'을 뛰어넘는 '한',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렇다. '한을 뛰어 넘는 한', 불만스러운 현실을 한탄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그것을 초월하여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한의 세계, 이것이 우리 소리의, 아니 우리 민족 가슴 깊이 자리잡아온 한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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