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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판소리 감상문

by 13지은 posted Mar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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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판소리 감상>

2013260027 국어국문학과 박지은


   사실 나는 공연을 보기 전까지 은연중에 판소리나 창은 호호백발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앉아 한복을 입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대학교에 와서 국문과에 들어온 이후 다양한 수업에서 들은 판소리 역시 기존 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평소 나는 말귀가 어두운 편이라 친구들이 하는 말도 되묻곤 했는데 판소리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것과 다른 어휘와 발성까지 사용하니 애초에 판소리를 즐기기가 힘든 운명을 타고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예전에 딱 한 번 판소리에 대해 재미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악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흥부놀부 창극을 공연하는 것을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내 또래 아이들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부르는 창과 연기를 감상하면서 판소리가 의외로 신나고 재밌다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판소리>는 예전에 내가 친구의 공연을 보고 느꼈던 '이렇게 들으니 판소리도 꽤 재밌을 수 있구나.'하는 감상을 다시금 들게 했다.

    <애니메이션 판소리>는 또박또박하고 또랑또랑한 발음의 젊은 창자와 그에 어울리는 요즘 어휘를 사용한다. 또 고수와 창자만이 화면을 구성하는 기존의 판소리와 달리, 상황을 부연설명 해 주는 만화영상이 합쳐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판소리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그 자체로도 재밌다. 우는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더 이상 곶감이 아니고 뽀로로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무엇이든 재밌고 흥미롭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애니메이션과 한층 젊어진 판소리의 합체는 이색적인 모험이나 실험에 그치지 않고 낡은 옷 뒤에 가려졌던 판소리의 매력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애니메이션 판소리>는 어린이 소리꾼을 포함한 다양한 창자들의 생동감 있는 판소리를 들려주고 보여준다.  등장한 화소들 중에는 요괴를 퇴치하는 스님이나 꼭두쇠 여인 이야기 등 처음 들어보는 것들도 있었고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것들도 있었는데, 익숙한 이야기들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말로 새겨진 비석이라는 구비문학의 뜻에 맞게 같은 이야기가 전승자들의 의도에 따라서 변형된 것이다.  ‘붓통에 숨긴 목화씨 이야기’의 경우, 내가 알고 있던 버전에서 문익점은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문익점은 목화를 관리하는 중국 관리에게 추위에 떠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목화를 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익점은 포기하지 않고 중국 관리의 집 앞에 먹고 자기까지 하며 끈질기게 간청하는데 결국 중국 관리가 그 정성에 감복하여 목화씨를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버전은 딱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버전이었다.  도둑질은 교육상 안 좋으므로 간청을 해서 얻어냈다는 이야기로 바꾸고 문익점의 행적을 더 극적으로 부풀린 것이다. ‘김씨와 황씨 처녀 이야기’ 판소리는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한 줌의 재가 돼서 사라진 신부 모티프’에 신랑이 산 위에 올라가서 재를 뿌리니 신부가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추가된 모습이었다. 어떤 산의 전설로서 이 모티프가 활용된 것이다. ‘너무도 못생긴 춘향’의 경우 ‘심청전’, ‘심청가’, ‘효녀 심청’ 등을 비롯해 현대에 와서까지 ‘퓨전 심청극’이나 ‘드라마 향단전’ ‘영화 방자전’ 등등으로 각색되며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춘향-몽룡의 모티프를 너무나도 못생긴 춘향이와 아름다운 향단이로 색다르게 틀은 이야기이다.

   서로 다른 판소리들이 같은 모티프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김씨와 황씨처녀 이야기’와 ‘왕건-장화왕후 이야기’는 ‘물 한바가지만 달라는 지나가는 청년의 말에 버들잎을 똑 따서 띄워주는 처녀’라는 같은 화소를 공유하고 있는데, 사려 깊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는 것이 여인들의 미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물바가지에 버들잎 띄워주는 행동은 언제, 누가 처음 한 것일까? 등장인물들이 스스로의 생각으로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운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어떤 여자가 이런 행동을 해서 왕비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따라한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태조 이성계 역시 이와 유사한 버들잎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버들잎 아가씨가 우리 남성 선조들의 오랜 로망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애니메이션 판소리는 또한 민중의 한을 풀어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민중의 소리’로서의 판소리의 면모 역시  톡톡히 보여준다. ‘재주를 통해 적의 본진에 숨어들어가 적장을 찌르는 일곱 살 검객 황창랑’이야기는 병자호란 당시 박씨전이 우리 민족의 상처받은 자존심과 한을 위로해주었듯이 당시 신라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을 것이다. ‘꼭두쇠 여인 바우쇠’는 애니메이션 판소리 중 민중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백성들 중에서도 하층민에 속하는 남사당패 여성 바우쇠가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남자들의 집단인 남사당패에서에서 꼭두쇠가 되는 이야기는 민중들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며 두고두고 사랑받고 있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고 판소리 역시 민중가요의 왕좌에서 밀려나며 그 힘을 잃었고 지금은 과거의 유산처럼 지켜 주어야할 존재, 낯설고 어려운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판소리는 분명 우리 민족의 혼을 담아온 ‘민족의 소리’로서, 여전히 우리를 웃기고 울릴 힘을 가지고 있다. 중세 신분제 사회에서 명문가의 양반으로 호위호식하면서 살 수 있었던 권정이 멍석말이를 당할 만큼, 창은커녕 우리말도 잘 모르는 외국 학생들의 귓가에서 자꾸 맴돌 만큼 판소리 그 자체가 가진 매력과 가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애니메이션 판소리나 창극, 혹은 랩 판소리처럼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면, 젊은 세대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판소리의 매력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을 가능성도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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