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리진오에게

by 성철 posted Jun 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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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대화 창구를 이곳으로 택했다. 요즘 태화의 홈이 썰렁하기도 하려니와,
어떤 객관적인 장소를 통해 한 번 여과한 말들이, 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래서 이곳으로 장소를 택했다. 태화의 허락, 혹은 불허는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어떤 면에서, 네가 나를 어떤 대상으로 삼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선배된 자들의 저 깊은 가슴속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이다. 시간에 대한 두려움, 입에 대한 두려움, 무엇보다 후배에 대한 두려움.
그런 점에서 나도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어떤 잣대로, 누군가에게 재단된다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선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이란 불일치성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은 모자른 어떤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역시 그렇다. 그래서, 후배들의
어떤 시선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선'에 대해서는 www.cyworld.com/hiddenrain의 버릇이라는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하여, 나는 너의 그런 '어떤' 선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만, 적어도,
네가 바라는 '어떤' 조언자는 될 수 있을 듯하다. 만일 조언자의 조언이 시간에 관련된
것이라면, 혹은 시간의 차이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의 차원이라면,
나는 기꺼이 너의 조언자가 되겠다.

직접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석사 일학기, 지금의 일학기 3명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발언으로서의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기대가 통용될 만한 시간을 너희는 보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대학원에서. 너희는
'기껏' 석 달여를 보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너희들의 학부생적인
모습조차 용인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이미' 석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대학원 수업을 학부의 수업과 동일시하는 태도(꼭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스터디
시간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이것도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혹은 치기 어린 행동.등은.
대학원생으로서는 티끌만큼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앞으로 네 글에서 드러날
것이다. 네가 불안해 하는 그 무엇을 나는 알 수 있을 듯하다. 아니 나는 지금도.
아마 네가 불안해 하는 그 무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얼마간의 시간을 그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그것은
사색일 수도, 책일 수도 있겠다. 혹은 술이거나.(술을 많이 마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택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누구에게서 얻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 말이 길어졌다. 요는 이렇다. 너는 석사 과정에 다니는 학생이지,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박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리한 욕심은 허무로 남는다. 그리고. 참고로
나는 스킨쉽을 싫어하며, 술 취해서 전화하는 것을 무지 즐기지만, 만취의 상태에서는
전화를 걸지 않으며, 따라서 술 취한 목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한다. (네가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참고하라는 말이다.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냐. 그럼 발표준비 잘 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