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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노원구 월계3동

by 하늘지기 posted Mar 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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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의 심부름으로 상가슈퍼에 다녀왔다
국거리로 쓸 고기 조금과 오백원짜리 아이스크림 10개를 사서 돌아오다가 우편함에 들렀다

하얀 봉투의 소포가 와 있었다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요샌 서점에 가지 않아도 웬만한 책은 다 집에서 받아본다
그러나 이 책은 무슨출판사, 무슨서점, 무슨택배...라는 따위의 딱지가 붙은 것이 아니었다
선물인 것이다

하얀 봉투에 빛바랜 흰 종이를 오려 미려한 필체로 주소가 적혀 있었고,
꼼꼼하게 풀칠이 되어있었는데도 겉에는 하얀 노끈으로 다시 묶여져 있었다
노끈을 풀고 봉투를 열었더니 하얀 봉투 하나가 더 나왔다
정성스런 포장은 물론
그 안에 들어있는 책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고,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그 분이 적은 우리집 주소였다

'시내 노원구 월계3동...'
내가 적었던 것은 물론이며
다른 사람들이 적었던 것 중에서도 아직 이렇게 된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서울로 보내는 것이니 그렇게 적어도 무방하기는 하겠다만
서울특별시라는 정식 명칭 대신 시내라고 쓰여진 것이 볼수록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생각해 보자
그러지 않는 척 하면서, 알게모르게 격식이란 걸 지키면서 살려고 하지는 않았었는지
마음만은 자유롭다고 소리쳤었던 것들이 한낱 생경한 떠벌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은 시골이 아니기 때문에 시라는 것을 꼭 붙여야 하거나,
우리나라 제일 가는 도시이기 때문에 특별한 시라고 해야하거나,
그런 걸 지키지 않는다고 뭐랄 사람도 없었다
서울특별시를 몽땅 생략한 적이 있기는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건 대체로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였던 것 같다
공문서이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할 경우엔 여지없이 서울특별시라고 또박또박 적었었다

선물하신 분의 의중과는 상관없어도 그만이겠지만,
이 두 글자를 보는동안 반성 혹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곁눈으로 의식하며 감안하려고 했던 것들이
과연 폭넓은 시각이거나 자세였을지...
서울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이 당장 보게 된다면 모를까,
시내라고만 적어도 되는 것은
서울특별시라고 적는 것보다
훨씬 여유로운 것이다
때론 시선의 폭을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훨씬 풍요로운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런 것의 차이에 대해 마땅히 정의하지 못하겠다
결국 나는 여태까지 규칙과 격식만 배워왔던 모양이다
꽉 막힌, 그런 여유없는 놈으로 살아온 것이다
순간 또 다른 잔머리가 막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걸 보내신 분이 칠십노인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하면서 말이지...

하여튼,
평생의 과제다
나만 머리 있고, 나만 심장 있다는 식의 오만한 생각을 없애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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