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플레이

by 하늘지기 posted Mar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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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놈의 3월병이 시작된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소심하거나 세심하거나 쪼잔하거나 치사하거나, 아무튼 상당히 예민한 기질에 속하는 건 분명한데
거기에 더 보태어
3월 중순 즈음에 으레 있어 왔던 '시작에 관련된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작이란 것이 원래 설레임 아니면 두려움 혹은 막막함 같은 것을 동반해야 정상일텐데
근년간은 그런 기분이 잘 들지 않았다
표현을 하기가 참 어렵다만, 말하자면 '막막함에서 오는 두려움이 없을 만큼 눈 앞에 해치울 일이 쌓여 있는데다가, 그것들조차도 모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새로운 설레임 따윈 생길 것 같지도 않은' 정도이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은, 그것을 기한 내에 해치울 자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 하나 마음에 들게 완결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끙끙대기만 하다가 올해 3월도 그냥 지나가버릴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이런 식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개인 플레이!

나와 결정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말아서, 그 정성을 나에게 쏟자... 라는 식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사족은 반드시 붙여야 한다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확도나 완결성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일의 결과라는 것이 반드시 그에 대한 정성에서 결판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좀더 치사한 쪽으로 생각을 확장시켜 보자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내가 만든 결과물은 결과물 그 자체로 평가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수행한 일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에서의 무언가가 피와 살로 화한다
더 설명하려 들면 더 치사해지므로 이 부분은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처음엔 '좀 이기적으로 살아볼까?' 하고 생각했다
이기적인란 것은 내가 생각한 개인 플레이란 것과 매우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그 말은 쓰지 않고 싶었다
상대를 향해 뱉을 때에 뱉는 나 자신마져 기분이 좋지 않은 그 이상한 어휘를, 굳이 내가 나에게 던져서 자책으로 연결시킬 필요가 있겠는가, 설령 그 뜻에 아주 잘 맞는다 해도 말이지

그 다음에 생각한 것은 당연히 개인적!
그러나 이 말에서도 이기적 못지 않은 불쾌감이 느껴진다
어둡거나 우울한 분위기가 난다고나 할까
아마도 '주의'라고 하는 말이 자주 '개인'이라는 말에 붙어서, 그것을 엄숙한 삐딱선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주의'를 빼고 '플레이'를 붙이기로 한다
'놀이'라고 하는 좋은 우리말도 있지만, 그것을 붙이게 되면 '혼자 놀기' 즉 고독과 왕따의 진수 혹은 자폐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상상하게 되는, 현대사회 언어의 사회적 의미와 연결되어 버린다
이것은 이기적인 것과 함께 '대책없는 인생'을 상징하는 쌍두마차에 해당된다
'시작병'을 고친다고 하면서 그런 '무대책성 마음 먹기'를 계획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나에게 정성을 쏟되 무언가 역동적이야 좋을 것이다
이럴 땐 코쟁이의 말을 슬쩍 가져다 쓰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다
그들의 말은 내 정신세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멋도 모른 채 대충 사용하고 마음대로 해석하기에 아주 좋거든~

개인 플레이!
나 자신에게 좀더 집중하자!
그래서 무언가에 확실히 골몰해 있을 4월을 맞아 보자!
게다가 나는 이미, 사회적 2차 집단 안에서, 그 안의 동료들을 기준으로 하여, 필요할 때마다 안심하고만 있을 나이와 시기를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긴장 좀 하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