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포카로 밟히다

by 하늘지기 posted Apr 0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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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게임에 들어가서 포카를 했다
인터넷 게임이 대개 그렇듯이,
진짜가 아닌 돈을 쌓아놓고 하는 것이다 보니 래이스를 하는데 망설임이 별로 없다
홀랑 잃는다 해도 그 아쉬움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오히려, 뻥카도 쳐가면서 사나이의 호방함을 훈련하는 연습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풀하우스의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래이스를 친다
상대방의 액면에 트리플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비리비리한 3트리플 정도면 그냥 무시하기가 십상이다
1억이건 2억이건 끝까지 하프를 불러서 급기야는 올인도 불사한다
그렇지만, 정작 풀하우스를 잡고도 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풀하우스일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따라오는 상대는 당연히 그와 같거나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낮은 족보로 승부할 때에는 그 성패가 어느 정도 짐작되지만
트리플에서부터 풀하우스까지의 족보를 각자 들고 붙을 때에는
기대할 수 있는 승리의 확률이 오히려 낮게 된다
게다가 질 경우에는 몇 백배의 손해까지 보아야 한다

하지만 풀하우스의 단계를 넘어서 포카를 잡게 되면
오히려 배팅을 자제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다른 사람들이 포카인 걸 눈치채고 모두 죽기라도 해버린다면
나의 찬란한 포카는 말 그대로 무효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오늘은 여섯장 째에서 이미 9포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내 패의 액면에는 9트리플이 드러나 있었다
같이 게임하던 네 명 가운데 셋은 트리플을 보자마자 죽어버렸다
그런데 나랑 돈이 비슷하게 남은 한 사람이 원페어 액면에 콜을 불렀다
트리플이거나 풀하우스를 째러 가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액면의 원페어는 10이었으니 승부는 모를 일이다

히든을 받고
나도 혹시라도 저이가 죽기라도 할까봐서
돈은 조금 덜 벌더라도 찬란한 포카를 보여주리라는 생각에
삥을 날렸다
그러자 그가 올인을 하면서 하프를 불렀다
어라? 왠 떡이지... 하면서 몇 초간 망설이는 척하다가
콜을 부르고 올인을 했다
빵빠레 소리가 울려퍼졌다(포카 이상이 터지면 빵빠레가 울린다)
흐뭇해 하면서 감사를 멘트를 쓰려고 하는 순간,
내 잔고가 0원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상대는 10포카, 그 빵빠레 역시 그의 것이었다
억울한 말 한 마디 할 겨를도 없이 잔고가 없다는 이유로 방에서 튕겨나왔다

그랬다
뛰는 놈 위엔 반드시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재수가 좋다느니 나쁘다느니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다
나와 상대의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그이 역시 나처럼 당했을 것도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그의 머리 위를 날고 있는 존재는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대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그것을 각오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대가 나는 놈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예측을 했었더라면
일보의 후퇴를 감행하고 다시 승부를 걸어서 이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뛰는 놈이라고 해서 나는 놈을 잡지 못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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