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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기를 만지는 것에 대하여

by 비맞인제비 posted Jul 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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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하철 막말남 사건과 관련해서
아기를 만진다고 노인을 페트병으로 때린 여인의 일도 언급되었었죠

그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대체로 남의 아기를 만지면 안된다는 의견이 많더군요
귀여우면 말이나 표정으로만 표현하는 게 좋다는 거죠

저도 기본적으로는 그게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위생이나 프라이버시의 문제와는 별도로
표현이 좀 어색합니다만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지킨다'는 관점에서 좀 세밀하게 살필 필요는 없는가 하는 의문이 자꾸 들어요

사실 제가 귀여운 아기들을 보면 가끔 만지기도 하거든요 -_-;;
물론 아기 엄마가 불쾌할 정도로는 하지 않고요, 여태까지는 다들 함께 아기를 귀여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생글생글 웃는 아기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는 것은 기본이고요
가끔 손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아기들이 먼저 저를 잡는 경우도 많고요)

아!
잠깐 얘기가 샜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남의 아기를 함부로 만지지는 말아야 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저하게 냉정한 분위기를 아기들에게 제공하는 건 반대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의 약자들을 습관처럼 챙기듯
아기들에게도 특별한 배려를 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귀엽다면서 만지고 쓰다듬고... 뭐 이러자는 게 아니라
해맑은 눈으로 쳐다보면 반갑게 인사해주고 까꿍도 해주고 그러는 게 좋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남의 아기에게 절대로 신경 안 쓰는 건 서구에선 이미 일반적인 풍토이고,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다'란 취지의 댓글을 보고
전 정말 멍~했습니다

저는 노인인지 아닌지 애매한 분들에게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일은 있어도
아기를 안고 다니는 아줌마들이나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꼭 양보합니다
등산복 잘 차려입고 다니시는 어르신들보다는 그들이 전철에서 서 있기가 훨씬 힘들 테니까요
그리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같은 곳에서도 항상 아이들을 주시하며, 반갑게 안녕~도 하고
조금 불안하다 싶으면 곧장 아기들을 안아 올립니다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도 아이들을 들어올려서 길가로 옮긴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도 아기의 부모들에게 눈총 받은 일은 없습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받죠

오늘도 열차에서 내려 서울역 에스컬레이터를 탔습니다
그리고 저를 앞서 가던 한 아줌마가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가방도 두 개 정도 들었기 때문에 두 아이를 컨트롤하기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저는 역시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부터 세 모자를 주시하고 있었죠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큰 아이는 엄마를 앞서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아기 엄마는 두 아이와 가방을 동시에 챙기려다가 뒤로 잡은 작은 아이의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작은 아이는 겨우 걸어다닐 정도의 아기였습니다
아이 엄마 - 작은 아이 - 저
요렇게 에스컬레이터의 계단 하나씩을 딛고 있는 상태였는데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의 오른쪽 무릎이 접히는 순간
제가 샥~ 낚아 올렸지요 ㅎ.ㅎ

아이가 그대로 오른쪽으로 넘어졌다면
에스컬레이터의 위험한 모서리 때문에 어디를 다쳐도 다쳤을 것입니다
제가 없었으면 뒤로 굴렀을지도...

아이 엄마는 제게 세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쓰다 보니 착한 어린이 자랑질이 되었는데요 -_-;;

요는,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어느 노약자보다도 불안하고 약한 것이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말귀를 알아먹을 정도의 어린이라면 몰라도
그 아래의 아기들은 정말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항상 아이들의 엄마를 배려해줘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엄마의 그 고생 덕에 컸지 않습니까

말귀를 알아먹을 만큼 자란 아이들에게야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마라' '남이 주는 거 받지 마라' 등으로 교육하기 시작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에게까지 '쌩까는 사회' 풍토를 가르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너 자꾸 말썽 부리면 옆의 아저씨가 이놈 한다" 라고 아이 엄마가 말하면
주저없이 "이놈!"도 해주고... 그래야
아이들이 이 사회를 안전한 공간, 밝고 정다운 공간으로 익혀나가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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