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속의 설날 풍경>
●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
조선 순조 때에 열양(洌陽), 곧 한양(漢陽)의 세시풍속을 기록해 엮은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원일(元日)조를 보면, 설날부터 사흘 동안 모든 사람들이 왕래하느라 떠들썩하며, 남녀노소의 울긋불긋한 세비음(歲庇陰[설빔]) 차림이 길거리에 빛나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며 덕담 섞인 인사를 나눈다고 묘사되어 있다.
설날이란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설이 제기되어 있다. 그 가운데에는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 ‘날’이 붙어서 만들어졌다는 의견이 있으며, 개시(開始)의 의미를 띠는 ‘서다’로부터 ‘선날’이 성립되고 그것이 연음화되어 ‘설날’이 되었다고도 한다. 한편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로 미루어 ‘삼가다(愼)’의 의미인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나이를 세는 단위인 ‘살’을 그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설날은 하나의 축제와 같은 것이면서도, 낯설고 새로운 시간을 맞으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조심스레 삼가기도 하는 의미심장한 날이다.
그런데 설날의 유래를 아주 독특하게 설명하는 속담이 있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어찌 보면 말장난 같은 그것이다. 선조 때의 학자인 이수광(李?光)이 [여지승람(輿地勝覽)]에서 설날을 '달도일(??日)'로 적은 바 있는데, 애달프기가 칼로 마음을 자르는 것 같은 날이라는 의미이다. 하기야, 사흘 동안이나 새로 지은 옷을 입고 떠들썩하게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되었겠는가.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해진 요즘에도,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는 명절을 꺼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한 해 농사의 수확량이 변변치 못할 경우 그 해의 추석에는 곧 닥칠 겨울에 대한 걱정부터 앞설 것이 듯, 차례며 세배며 설빔이며 설날을 기념할 갖가지 행사가 버겁게만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설이란 것이 딴 세상의 잔치요 서러운 겨울날들 중의 하루일 뿐인 것이다.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계획과 다짐, 그리고 조상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처럼 한껏 먹고 놀 만한 연휴로만 비쳐지기 쉬운 요즘의 명절 분위기에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는 속담이다.
● 꿩 대신 닭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만큼 이날을 아무 탈 없이 지내야 1년 365일이 평탄하다고 하여 지극히 조심하면서 가만히 들어앉는 날이란 뜻에서 설날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설날을 설명하였다. 설날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엄숙과 순수에 있다. 깨끗한 자세로 근신(勤愼)의 마음가짐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설날을 지내는 최고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음식에도 순수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담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흰떡국이다.
흰떡국은 멥쌀가루로 만든 가래떡을 썰어서 육수에 끓여 만든다. 설날의 떡국은 차례상이나 세찬상에 올려지며, 모두가 그것을 한 그릇씩 먹음으로써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실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날의 떡국을 가리켜, 나이를 더하는 떡이란 의미로 흔히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였다.
원래 떡국의 육수로는 소고기나 꿩고기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값이 비싼 소고기나 구하기 어려운 꿩고기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닭고기로 대신하기도 하였다. ‘꿩 대신 닭’이라는 유명한 속담은 주로 적당한 것이 없을 경우 다른 것으로 대신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사실 이 말에는 가난했던, 그러나 소박했던 우리네의 설날 풍경이 아릿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 강회 먹을 때나 간다
설날에 행하는 풍습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친족과 웃어른들께 올리는 세배(歲拜)이다. 설빔을 차려입고 어른께 큰절을 올리면서 축원을 드리면, 어른도 예를 갖추어 푸근한 덕담을 들려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설날에 즈음하여, 사돈 사이의 부인들이 새해 문안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하녀를 서로 보내는 풍습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때의 하녀를 특별히 문안비(問安婢)라 칭하였는데, 영조 때의 학자인 이광려(李匡呂)의 시에 '뉘 집의 문안비가 뉘 집으로 문안하러 들어가는고(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라는 구절도 보인다.
사돈 사이에는 그처럼 예의를 잘 갖추었지만, 사위의 처갓집 세배는 꾸물대기 일쑤였던 모양인지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 강회 먹을 때나 간다’는 속담이 전한다. 백년 손님으로 맞아주는 처갓집의 입장과는 달리, 은근히 처갓집을 챙기지 않는 사위들의 경향을 나무라기 위해 생긴 말인 듯하다. 식물로 만든 회라고 할 수 있는 미나리 강회는 겨울을 지낸 봄철의 미나리로 만들 때에 제맛을 내는데, 임금님이 즐겨 드시거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고급 메뉴였다. 꽃피는 봄이 되어서야, 세배한답시고 미나리 강회를 먹으러 처갓집에 가는 사위가 퍽 얄미울 만도 하다.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처갓집 세배는 앵두꽃을 꺾어 갖고 간다’는 말도 있다. 장모의 미나리 강회 맛을 보러 가는 얄미운 사위로 보이기도 하지만, 본가에서의 행사가 많은 탓에 처갓집 세배는 대개 느긋하게 간다는 풍습이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기로 앵두꽃이 필 시절에 처갓집 세배를 갔다가는, 오늘날의 사위들은 아마도 일 년 내내 구박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평등의 시대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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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에 실린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에도 김진이님께서 일러스트를 그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