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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헤어스타일의 외국인

by 하늘지기 posted Jul 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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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신촌역 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외국인 두 명이 탔다
백인, 앵글로색슨인 듯 했다 (아마 미국인이겠지, 근데 내가 뭘 안다고...-_-)

한 사람은 키가 나보다도 작았다
청소년일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나랑 키가 비슷했다
많아봐야 스무 살이 조금 넘었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키 큰 친구는 헤어스타일이 엄청났다
아주 굵은 래게파마를 했는데, 멀리서 보면 두꺼운 고무줄 여남은 개 붙여놓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굵은 고무줄은 색깔도 가지각색이었다
얼굴도 꽤 미남이었고, 웃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런데 경로석에 앉아있던 아저씨 한 분이 그에게 무슨 말을 건넨다
오십대 후반에서 육십대 초반 정도...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지만 그 어르신의 말씀은 아주 잘 들렸다
지하철 안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어폰을 빼지 않은 채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 머리가 왜 그래?
외국인 : (말 걸어주어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바디랭귀지로만 응답)
아저씨 : 머리가 그게 뭐야~아? 머리가 보기 안좋다구~~!!
외국인 : (여전히 싱글벙글 옆 사람과 무어라 말할 뿐 아저씨를 보며 계속 웃는다)
아저씨 : 깡~! 패~! 같~! 어~!
외국인 : (상동)

객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았고
아저씨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화통을 구워드셨을 정도의 데시벨이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참 무안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닿았을 때, 외국인들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찬란한 헤어스타일의 그 외국인은 여전히 벙글거리면서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난 여전히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듣지는 못했지만
얼핏 보기에 '안녕히 가세요' 정도였다
요즘 미국 당국에서는 한국인들의 반미감정이 높은 점에 우려하여
한국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일일이 행동을 주의시키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 외국인 청년도 자신의 정부가 내린 그러한 지침에 따라 한국인을 상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보여준 난데없는 한국식 인사는 완벽한 한 방이었다

그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곤 고작 그 인사방법 한 가지,
아저씨가 그 외국인 청년에게 보여준 것은 하릴없는 전면부정,
외국인 청년의 완승이었다

한국을 더 아끼는 쪽이 아마도 그 외국인 청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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