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by 촌사람 posted Sep 1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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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즐거우셨는지요.
꼭 이렇게 답장으로만 글을 올립니다.
제 고향이 남해라고 했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
추석을 지내고 다음 날 오전 태풍이 올거라고 서둘러 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이드신 부모님을 남겨둔채로.
태풍이란 친구가 상륙할 예상 지점이 경남 사천이니 거기가 거긴데요.
그래서 오는 길이 자꾸 뒤돌아보였지요.
그 날 저녁 제가 사는 이곳 마산도 온통 물바다에다 바람으로 난리였습니다.
제가 사는 집이 좀 높아요. 23층 아파트인데 저는 20층에 살지요.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켜놓고 바람때문에 창문 유리가 터질까봐 문이란 문은 모조리 꼭꼭 잠궈놓고 앉았는데 글쎄... 집이 막 흔들리잖아요.
식탁위 전등이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고 어항 물이 출렁거려요.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유리병을 바닥에 눞혀두었더니 이게 굴러가는거에요.
다음 날 아침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곧장 남해로 달려갔습니다.
제 시골 집에는 뜰 가운데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밑둥치가 어른 한 아름은 넉넉히 되었지요.
감도 감이지만 기품있는 자태와 시원한 그늘에다 우리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아줬던, 그래서 우리 가족의 하나였던 그 나무가 뿌리채 뽑혀 넘어갔다는 겁니다.
집을 들어서며 엉망이 된 다른 것들은 넘어진 감나무에 가려 한참 뒤에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무둥치를 톱질하고 가지를 자르며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냈습니다.
마치 죽은 사람을 염습하듯.
이것저것 큰 손 들여야 하는 것 대강 해드리고 어제 오후 이곳으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오고가는 길가에 널부러진 수많은 나무들 모두보다도 내 집 뜰에 섰던 감나무 한 그루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은 참 사치한 감상이겠지요.
태풍이 남긴 다른 더 큰 상채기들이 수두룩한데요.
좋은 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