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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즐거우셨는지요.
꼭 이렇게 답장으로만 글을 올립니다.
제 고향이 남해라고 했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
추석을 지내고 다음 날 오전 태풍이 올거라고 서둘러 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이드신 부모님을 남겨둔채로.
태풍이란 친구가 상륙할 예상 지점이 경남 사천이니 거기가 거긴데요.
그래서 오는 길이 자꾸 뒤돌아보였지요.
그 날 저녁 제가 사는 이곳 마산도 온통 물바다에다 바람으로 난리였습니다.
제가 사는 집이 좀 높아요. 23층 아파트인데 저는 20층에 살지요.
전기가 나가 촛불을 켜놓고 바람때문에 창문 유리가 터질까봐 문이란 문은 모조리 꼭꼭 잠궈놓고 앉았는데 글쎄... 집이 막 흔들리잖아요.
식탁위 전등이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고 어항 물이 출렁거려요.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유리병을 바닥에 눞혀두었더니 이게 굴러가는거에요.
다음 날 아침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곧장 남해로 달려갔습니다.
제 시골 집에는 뜰 가운데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밑둥치가 어른 한 아름은 넉넉히 되었지요.
감도 감이지만 기품있는 자태와 시원한 그늘에다 우리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아줬던, 그래서 우리 가족의 하나였던 그 나무가 뿌리채 뽑혀 넘어갔다는 겁니다.
집을 들어서며 엉망이 된 다른 것들은 넘어진 감나무에 가려 한참 뒤에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무둥치를 톱질하고 가지를 자르며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냈습니다.
마치 죽은 사람을 염습하듯.
이것저것 큰 손 들여야 하는 것 대강 해드리고 어제 오후 이곳으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오고가는 길가에 널부러진 수많은 나무들 모두보다도 내 집 뜰에 섰던 감나무 한 그루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은 참 사치한 감상이겠지요.
태풍이 남긴 다른 더 큰 상채기들이 수두룩한데요.
좋은 날 되십시오.
Comment '6'
  • ?
    pino 2003.09.15 17:54
    연일 보도되는 소식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
    여기에도 직접 태풍과 직면했던 분이 계시군요.
    님의 글을 읽으니 정말 실감이 나네요...
    위로를 보냅니다.

    누구나 각자의 감나무 같은 소중한 것들이 있겠지요.
    저희 시댁에도 마당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답니다.
    가끔 정신을 놓으시곤 하시는 노령의 할머니가 감나무 밑에 앉아서
    누군가와 하염없이 얘기를 하는 모습을 뵙고 서울로 왔었는데...
    할머니에게는 그 감나무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랍니다.

    하늘지기님! 고향집은 어떤가요?
    울진쪽으로 태풍이 빠져나갔다고 해서 많이 가슴을 조렸었는데,
    제 친지들은 큰 피해 소식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사상 최대의 태풍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픈 가을이 시작되나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위로의 손길을 전해야겠어요.

  • profile
    하늘지기 2003.09.15 20:37
    저희동네엔 이렇다할 피해가 없었었고, 깊은 밤중에 정전이 되었을 뿐입니다
    정선생님의 피해 소식을 들으니 조금 실감이 나는 듯 합니다
    모쪼록 다시 감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어서 모든 것이 복구되어 다음번에 이렇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화이팅~!
  • ?
    촌사람 2003.09.16 09:33
    pino... jjy님.
    여기 홈지기님께는 제가 빚을 지고 있는 처지입니다.
    어쩌다 컴으로 인연을 맺어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눈치코치없이 눌러앉아 가끔씩 성가시게 하거든요.
    또...
    주인을 닮은 객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지만 분위기가 좋기도 했고요.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私信에 지나지 않을 제 글을 읽어주시고 덧글을 써주신 pino님께 고마움을 드립니다.
    님의 홈까지 갔다가 되돌아 와서 이렇게 사족을 붙입니다.
  • ?
    촌사람 2003.09.16 09:37
    참... !
    하늘지기님의 충고로 제 홈의 노래를 바로 잡았습니다.
    제가 음치이거든요.
    그만큼 `音`쪽에는 무식합니다.
  • profile
    하늘지기 2003.09.16 21:56
    히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기가수의 노래 제목을 혼동하는 것과 음치와는 절대 무관한 듯 합니다
    음을 잘 내건, 잘 듣건
    좋아하고 느낄 줄만 안다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 ?
    pino 2003.09.20 10:56
    촌사람, 정선생님... ^^; 제 홈에 와보셨나보군요.
    저도 선생님 홈에는 몇 번 가보았는데, 꼬맹이들의 글도 아주 재미있더군요. ^^;
    왠지 그곳에는 글 쓰기가 뭣해서, 헤헤...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의 순진한 글들 속에 감동을 받곤 합니다.
    메뉴를 보니 창작시도 있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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