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초고속으로 지그재그 운전을 하면서도 깜빡이를 전혀 켜지 않는 차들이 종종 보인다
워낙 유명한 차이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유독 벤츠라는 차들이 그렇다
깜박이를 켜지 않을 뿐더러 단속카메라가 있어도
그냥 쌩쌩 지나간다
'음, 돈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그래도 깜박이는 좀 켜줘야 할 것 아냐!'
하며 대충 판단하고는
후방에서 벤츠가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면 그러려니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내가 약간 과속을 할 때에 보면
잘 나가는 도중에 앞을 턱 막아서는 저속의 차량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중에 어쩌다가 벤츠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한다
'아니, 벤츠씩이나 타고 다닐 거면 왜 저렇게 빌빌 기어가는 거야!'
참 이율배반적인,
참 이기적인 본능이 아닐 수 없다
어제는 지방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옆동 주차장에 실내등을 켠 채로 서 있는 차를 한 대 발견했다
쌓인 눈을 거의 치우지도 않은 주차장에 어째어째 차를 세우고
그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예전에 나도 실내등을 켜 놓은 채 일을 보고 왔다가
방전되어 버린 차 때문에 난감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차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차에는 전화번호가 붙어 있지 않았다
앞유리와 뒷유리, 차 내부까지 살펴봤지만 연락처는 없었다
그러다가 앞유리에 붙은 아파트 주차증을 보니 우리 동에 사는 사람의 차였다
경비실에 가서 인터폰으로 알려줄까 말까 하다가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새벽에 일찍 나서야 할 일이 있어서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내 차 앞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차 한 대가 떡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차에는 전화번호가 붙어있지 않았다
어찌어찌 해서 차를 빼내긴 했지만
급한 와중에 시간을 적잖이 낭비했었다
'실수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울 수도 있지만, 연락처는 항상 남겨놔야 하는 것 아냐!'
그 때의 생각이 나서 어제는 경비실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집에 들어와버렸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앉아 있자니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한 번 내지른 고집을 꺾는 것 또한 쉽지는 않다
하여 얼마간을 전전긍긍하는 동안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경비실에서 방송을 내보낸다
"옆동에 주차한 차량번호 0000 차주께서는, 실내등이 켜져 있으니 속히 끄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냥 그 차주의 집에다가 인터폰을 넣으면 될 것을
경비 아저씨는 저렇게 방송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옆동의 경비 아저씨가 주차 체크하다가 발견해서 우리 동 아저씨에게 차량번호만 알려주셨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 차주의 집이 1203호라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기 때문에
인터폰으로 경비 아저씨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다시 일어났지만
역시나 그냥 내버려두었다. 초지일관 -_-;;
그 별 것도 아닌 일인데,
난 이렇게 이기적이다
아니
복수심이 강한 것인가?
문제는 말이다. 남의 차가 실내등이 켜져있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그냥 지나쳐도 전혀 머리속에 말해줘야 하는거 아닐까 하는 고민 같은게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거다. 얼마전 폭설 내리고 한참 추울때 집에 들어오는 길 골목앞에 왠 아저씨가 엎어져 있더라. 꽤 늦은 시간이라 좀 걱정이 되어 쳐다보며 지나치려는데 어디서 난 사고인지 그 옆에 핏물이 고여있더라. 깜짝 놀라 옆의 지구대에 가서 경찰아저씨를 데려왔다. 화가났던건 그 쓰러진 아저씨로부터 두세발짝 뒤에 사람들이 서있었다는 거다. 하긴, 핏자국을 못봤다면 나도 그냥 지나치려 했을지도 모르지... 근데 엄동설한에 정신잃고 사람이 쓰려져 있는데 그냥 지나칠까 말까 고민했던 나 자신을 깨닫고 놀랐다. 그리고 내 손이 아니라 남의 손을 빌려야 했던 소심함에 또 놀랐다. 좀 더 어릴때라면 어깨라도 흔들어 줬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