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6일,
꽤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햇볕이 굉장히 뜨거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월 6일이고 하늘이 맑았던 날이었으니 당연히 더웠을 테지만
모든 일정이 바다에 띄운 배 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꼼짝없이 배에 갖혀(?) 있어야 하니 더욱 무덥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서해안 배연신굿은
우리나라 최고의 무당인 김금화 만신을 중심으로 하는 서해안풍어제보존회(? 확실치는 않다)에서
해마다 풍어를 기원하며 거행하는 선상굿이다
한 가지 크게 아쉬웠던 점은,
배를 타려고 부두에 가서 보니 "**** 공연"이라는 현수막을 크게 걸어놨더라는 것이다
그래, 굿이란 것이 공연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지
그렇지만
[굿]이란 것이 보다 신을 본위에 두는 것이라면
[공연]은 관객을 좀 더 의식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굿이란 것은,
[공연] [축제] [제의] 등 그것이 함의하는 많은 개념들 가운데에서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니 그냥 [굿]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가장 좋을텐데
무당들은 여전히 그 말을 대외적으로 당당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쉽다
배 위에 굿판이 차려졌다
수많은 장군님들의 초상이 보인다
배연신굿은 이북굿을 하시는 분들이 하는 것인데, 이북 만신(무당)들이 원래 장군빨이 센 게 특징이다
'독도는 우리땅' 티셔츠를 입은 스탭
오른쪽에 보이는 어르신들은 배치기노래를 불러주러 오신 분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배치기노래 또한 이북에서 전래된 것이다
시작은 나랏만신(국무) 김금화 선생님이 열었다
현장에서 보니 참 그릇이 큰 분이었다. 명불허전
무구를 바꿔가면서 굿거리를 진행한다
이번에는 칼을 잡았다
이번에는 오방기
저건 뭐라고 부르더라? 암튼 저것도 참 멋있다
다른 만신이 다음 거리를 진행했다
좌우로 보조의 역할을 하는 만신들이 서 있는데, 얼핏 보기엔 그냥 코러스 정도를 맡은 사람들로 보이지만 사실 저들도 어엿한 무당들이다
물론 무리들 중에서 짬밥이 낮기 때문에 저러한 보조의 역할을 하는 것일 게다
작은 캠코더를 들고 서 있는 또 다른 남자 만신
객석에 자리를 잡은 보존회원 만신들
그날 함께 구경갔던, 빨간 티를 입은 우리 사모님도 보인다
항아리 위에 올라선 만신 (아,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작투타기만큼 강한 포스는 없지만, 저 또한 그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리고,
왼쪽에 앉아있는 하늘색 저고리의 남자!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보존회의 일반인 회원들이 부지런하게 먹거리를 장만하고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데, 떡이 없어서야 쓰겠나
선상에 마련된 간의화장실
간의화장실이란 것이 어딜 가도 그런 것처럼, 여성들은 한참이나 줄을 서야 한다
반면에 남자들은 대충 쌀 수 있는 공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늘색 저고리의 남자 만신이 무대에 등장했다
이분은 서울굿을 하는 서울무당인데, 이 행사에는 청배만신(게스트)으로 참여한 듯하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이분을 만난 적이 있어서 기억했다)
이분의 역할은 아마도 대감놀이를 진행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대감놀이는 신나게 놀기도 해야 하거니와 걸립(돈 걷기)도 시원시원하게 잘해야 하니,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특급 게스트라 해도 무방하다
그날의 손님들 중에서 가장 일찍 술에 취한 아저씨가 무대로 올라왔다
만신은 그에게 술 한 잔을 대접하는 것으로 한 바탕을 시작했다
모자에는 벌써부터 만원 짜리가 몇 장 꽂혀있다
다른 원로 명창은 뒤에서 바람을 잡는다
손님들에게 술을 돌리고, 축원하고, 복채를 받는다
또 다른 만신이 오방기를 들고 가세했다
오방기는 뽑기의 형식으로 운수를 점쳐주기 위한 무구이다
그런 식으로 배 위를 한 바퀴 돌았다
오방기를 든 만신 아줌마
복채가 수북~
이번에는 아까 보조의 역할을 맡던 젊은 만신이 한 거리를 맡았다
보조 역할을 할 때의 얼떨떨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다
갈매기들도 구경하러 왔음
또 다른 만신의 거리
젊은 만신은 다시 보조의 역할로 돌아왔고
이번 거리의 주인공은 만신 중의 최연장자이다
대감 복장이 무척 잘 어울리는 할머니 만신
부채를 놓고 칼을 잡았다
장군님 복장을 하고 위력을 선보인다
다시 오방기
그런데
갑자기 가슴에 있던 한이 터진 모양이다
할머니 만신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김금화 만신
굿판에 가보면 꼭 눈물 짓는 장면이 있는데
오늘은 최연장자인 할머니 만신께서 눈물샘을 건드려 버리셨다
또 다른 만신이 돼지머리를 들고 나섰다
이북굿은 특히 장군, 칼, 희생물 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돼지머리에 칼을 꽂아서 사슬 세우기를 하고 있다
보조 역할을 맡던 젊은 남자 만신도 한 거리를 뛰었다
이분은 오늘의 익살 담당
일단 기를 가다듬은 후에
우스꽝스러운 쑈를 시작한다
표정도 익살, 못짓도 익살
무구로 해금 연주를 선보이고
다음으로는 가야금 연주도 보여준다
노만신들이 다시 만났다
최연장자 할머니 만신과 김금화 만신이
극 형태의 굿거리를 진행했다
[영산할아범 할멈]이라는 이름의 굿거리다
고개 숙인 할멈, 대사하는 할아범
굿이 진행되는 내내 마음이 쓰이던 할머니 만신
굿은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오른쪽에 보이는 분들은 배치기노래를 하시는 분들
대부분의 굿은
항상 대동의 마당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대동놀이를 위해 외국인 손님에게 무복을 입히고 있는 김금화 만신
자, 저쪽으로 나가서 춤추고 놉시다!
예쁜 빵모자를 쓴 할아버지도 놀기 위해 무복 하나를 입으셧다
우리 선생님도 파란 조끼를 입고 무리 안에 끼셨다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바람이 조금씩 세졌다
배를 끌어준 견인선 위에서도 축원을 빌어준다
햇볕이 따갑기는 했지만
바람 또한 시원하게 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