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복사저포기
글에 등장하는 여인은 부처님의 은총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긴 했으나, 그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는 듯이 귀신이 되어서 베필을 찾았고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양생은 그 여인을 위해 모든 걸 바친 불쌍한 사내로 비춰질 수 있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보자. 양생이 원했던 것은 영원히 함께 살 여인이기 보다 아름답고 열렬히 사랑하고 싶은 여인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대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온 순정을 바쳐 사랑했고 그녀가 귀신인 것을 알고 나서 자신의 재산을 바쳐 제사를 지내 줌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여인이 마지막 인사를 하였는데 본인의 의지로 정절을 지키면서 살았다. 이 것만으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룬 것이 아닐까.
- 이생규장전
이 글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최랑의 적극성이라고 생각한다. 말 한번 나눠보지 않은 남자의 만나자는 연서에 바로 ‘부부가 되어 끝까지 남편으로 모시고’자 생각하고, 술자리 후 ‘당신은 저를 따라오셔서 정을 나누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다락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점. 그리고 죽은 뒤 혼령이 되어서도 남편에게 다시 찾아와 시간을 보내고자 한 점이 그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 만연한 시대에서 여인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분명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들의 사랑에는 장애가 많았다. 이생이 영남으로 내쫒기고 혼인이 성사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으며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최랑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행복했던 시간을 결코 길지 못하다. 양반가에서 부족함 없이 산 주인공들의 사랑이 결국은 비극적으로 끝났다는 점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내용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