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사저포기
언젠가 인터넷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미국, 일본, 한국 드라마 각각이 가지는 특성을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에 따르면 의학드라마를 예로 들었을 때, 미국드라마의 경우 환자를 치료하는 내용이 주가 되고, 일본드라마의 경우 의사가 환자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이, 한국 드라마의 경우 의사가 연애하는 이야기가 주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이는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창작하던 시기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복사저포기는 양생과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루다가 끝에 가서는 여인이 양생에게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정업을 닦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윤회를 벗어난다는 것은 여인과 양생의 인연이 끊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해피엔딩이 아닌 것이다. 더하여 양생은 그 뒤에 장가를 들지 않았다는 내용이 더해져 이 소설의 결말은 엄청난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이생규장전
이 소설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시대에 지어졌으면 그 작가 김시습 역시 유학자라는 점에서 볼 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즉, 홍건적의 침입이라는 난리상황에서 여주인공 최랑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모습을 보여주어 여인이라면 정조를 지켜야한다는 당시의 유교사상을 전달하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생과 최랑이 부모의 동의인 혼인 없이 스스로 연을 맺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의 유교사상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통해 그가 강경한 유학자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완벽한 유교사상을 가진 학자라면 이러한 소재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와 홍건적의 침입 등 두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는데 등장하는 많은 방해물들은 오늘날 사랑이야기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로, 이 점이 오늘날 소설과 유사한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